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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학원을 나올 땐 쿨하게 나왔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퇴직금과 미처 받지 못한 월급 문제로 속앓이를 했다. 

악에 받친 을의 입장으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학원의 불법적인 행태를 고발하기 위해 증거를 모으고 다른 선생님들과 연락도 해보며 발을 동동굴렀다. 결국 원장 선생님과 얼굴을 붉힐 뻔 한 상황을 해결했지만(최선의 방법은 아니였는데 난 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일단 만족하고 마무리했다.) 그 과정에서 아빠에게 고용노동부 신고에 관한 자문을 구하며 불평을 토로하곤 했다. 

 

아빠는 원장선생님을 같이 욕해주며 내가 불쌍했는지 다음날 내 방에 조용히 들어오시더니 용돈을 줄테니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돈 있다는데도 아빠는 기어코 계좌번호를 받아갔다. 

그 뒤로 계좌에 입금을 해주신 적은 없지만 종종 현금으로 나에게 5만원을 주셨다. 엄마가 잔소리를 하시거나 왜 자기는 안주냐 핀잔을 주셔도 꿋꿋하게 용돈을 쥐어주셨다. 아빠가 하루종일 밖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벌어온 돈.

 

생활에 보탬이 되는 큰 돈은 아니여도 한 푼이 아쉬운 요즘을 생각하면 너무나 단비같은 용돈. 

이 나이까지 자립하지 못하고 용돈을 받는 처지가 참 부끄럽다. 그나마 일을 하던 때엔 그게 부끄러운지 어쩐지 생각조차 안하고 덥썩 받고 좋아했는데, 지금은 너무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거워 하루종일 머쓱하게 용돈을 받던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래, 생각해보면 내가 어딘가에 소속될 때 마다 느낀 행복은 작은 돈이나마 꼬박꼬박 벌어 가족들을 위해 돈을 쓸 수 있다는 것 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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